8개월에 송곳니가 먼저 나와서 꼬마 뱀파이어 같았다. 보통은 아래 앞니 두 개가 먼저 뿅 하고 올라오고, 그 다음에 위 앞니가 차례대로 나는 게 정석이라고들 하는데 우리 아이는 순서 따위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엉뚱한 곳에서 이가 불쑥 올라왔다. 아침에 기분 좋게 옹알이를 하며 웃는 아기의 입안을 무심코 들여다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위쪽 잇몸 양옆으로 뾰족하게 자리를 잡고 올라오는 작은 이 하얀 조각을 목격했던 그 순간의 당혹감과 신기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남들과 똑같이 자라지 않아도, 그 엉뚱하고 귀여운 모습 자체가 나에게는 잊지 못할 강렬한 육아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8개월 아기, 꼬마 뱀파이어 등장

정말이지 윗 앞니보다 송곳니가 먼저 올라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보통 육아책이나 인터넷 정보를 보면 아기 치아 나는 순서가 다 나와 있지만, 육아가 늘 그렇듯 내 마음대로나 책대로 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웃을 때마다 위 앞니 자리는 텅 비어 있는데, 양쪽 뾰족한 송곳니만 하얗게 드러나니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고 귀엽던지 모른다. 입을 벌리고 꺄르르 웃을 때마다 진짜 할로윈 데이에 나타난 조그마한 꼬마 뱀파이어 같았다.
아기를 보러 집에 놀러 온 친정식구들도 아기의 입안을 보고는 다들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렸다. 친정엄마와 여동생은 아기를 번갈아 안아 올리며 "아이구, 우리 집 꼬마 도깨비 나타났다!" 하고 놀려대기 바빴다. 윗 앞니가 빠진 것처럼 송곳니만 삐죽 나온 모습이 도깨비방망이를 든 아기 도깨비 같기도 하고, 드라큘라 백작의 어린 시절 같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순서로 이가 나면 혹시 치열이 틀어지거나 문제 생기는 건 아닌지 초보 엄마 마음에 살짝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꼬마 도깨비처럼 해맑게 웃는 아기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저 웃음만 나오고 모든 근심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 특이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는 그 시절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가장 큰 웃음 버튼이었다.
8개월에 이렇게 많이 해요?
이가 엉뚱하게 나는 와중에도 아기의 발달은 하루가 다르게 눈부셨다. 8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아기는 신기할 정도로 사람 말을 알아듣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손을 뻗으며 "주세요하고 말하면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이나 작은 물건을 내 손바닥 위에 착 내려 놓았다. 그 작은 손으로 명령을 이해하고 물건을 건네주는 행동을 볼 때마다 대견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또 신이나서 "박수" 하고 외치면 양손을 파닥거리며 짝짝꿍 박수를 쳤는데, 그 손짓이 얼마나 귀엽고 야무진지 몇 번이고 계속 시켜보고 싶었다.
특히 우리가 "또또!" 하고 외치면 아기는 방금 했던 재미있는 행동을 기억이라도 한 듯 똑같이 다시 반복해 주곤 했다. 우리가 자기 행동에 반응해서 웃어주는 게 좋은지, "또또!" 소리만 들으면 눈을 반짝이며 같은 재롱을 몇 번이고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 시기부터는 자기 발을 발견하고는 손으로 꽉 잡더니 입으로 가져가 쪽쪽 먹기 시작했다. 유연한 몸으로 누워서 발가락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8개월 아기만의 전매특허 귀여움이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동작을 성공해 내는 아기를 보면서 '8개월에 벌써 이렇게 많은 걸 할 수 있나?' 싶어 놀랍고 대견한 마음이 가득했다.
파병 남편, 아침부터 저녁 독박육아
하지만 아기의 재롱이 아무리 예뻐도, 눈을 떠서부터 다시 감을 때까지 오롯이 혼자 버텨내야 하는 육아의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아기를 재울 때까지 하루 종일 거의 완벽한 독박육아였다. 당시 남편은 해외로 파병을 나가 있는 상태라 집에는 나와 아기 단 둘뿐이었다. 몸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힘들었지만, 한국과 현지의 시차가 너무 커서 내가 정말 힘들고 지칠 때 마음대로 전화 한 통 걸어 통화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내가 아기를 안고 쩔쩔매고 있는 시간엔 그곳이 한밤중이거나 한창 작전 중인 시간이 많았기에, 내 고충을 제때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아기가 울고떼를 쓰며 징징거릴 때, 밥도 제때 못 먹고 화장실도 겨우겨우 다녀와야 할 때면 서러움이 울컥 밀려왔다. '남들은 남편이랑 같이 퇴근하고 목욕도 시키고 저녁 시간도 나누는데, 왜 나만 이렇게 외롭게 힘들어야 하지?' 하는 솔직한 감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쑥불쑥 올라왔다. 파병을 간 남편의 상황을 머리로는 다 이해하면서도, 몸이 부서질 듯 지치고 마음이 쓸쓸한 날에는 그 원망과 외로움을 온전히 눌러담기가 참 버겁고 힘겨웠다.
나랑 같이 육아해줘서 고마워요 친정식구들
그 캄캄하고 막막했던 독박육아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친정식구들 덕분이었다. 혼자 집에서 아기와 씨름하다가 감정이 밑바닥까지 내려앉을 때쯤 친정으로 달려가거나 식구들이 찾아오면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특히 마음이 잘 맞는 여동생과 함께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 앞 카페에 가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은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 같은 시간이었다. 특별히 거창한 곳을 가거나 엄청난 일을 하지 않아도, 내 고충을 알아주는 식구들과 한 공간에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비할 데 없이 편안해졌다.
친정엄마는 지친 나를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셨고, 여동생은 아기 꼬마 도깨비 미소를 보며 같이 재롱을 떨어주고 아기를 챙겨주었다. 혼자였다면 절망과 지침으로 가득 찼을 8개월의 육아 일상이 친정식구들의 따뜻한 손길과 온기 덕분에 웃음과 추억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나랑 같이 육아해줘서 고마워요 친정식구들.
그때 남편의 부재와 시차 속에서 혼자 섬처럼 갇혀있던 나를 바깥세상으로 끌어내주고 함께 아기를 안아주었던 친정식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그 암흑 같은 육아 우울증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매일 밤 혼자 울컥하며 견디던 그 막막함 속에서 내 손을 잡아준 건 결국 가족들이었고, 그 고마운 마음은 세월이 흘러 아기가 자란 지금도 내 가슴 한구석에 가장 깊고 따뜻한 채무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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