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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고사난자 3번, 입덧이 사라지는게 슬펐다.

by 하윤엄니 2026. 8. 5.

세 번째 유산, 둘째를 키울 마음의 준비가 됐다 싶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한 딸 아이 친구 엄마를 볼 때마다 속상했다. 분명 비슷한 시기에 아이 소식을 들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는 무사히 배가 불러오고 아기를 만날 준비를 해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아프고 속절없는 일이었다. 나 역시 이번만큼은 정신적으로 준비가 됐고 네 번째 찾아온 아이는 내 품에 안길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또 한 번 나를 차가운 수술대 위에 세웠고 참았던 서러움과 속상함은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치밀어 올라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곤 했다.

자연임신 4번, 소파술 3번

우리 부부에게 찾아왔던 네 번의 임신은 시험관이나 시술이 아닌 모두 자연임신이었다. 특별하게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아니었고 그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와 준 고마운 생명들이었다. 두 줄이 선명하게 그어진 임신 테스트기를 볼 때마다 세상이 다 내 것처럼 기뻤고 당연히 열 달을 무사히 품어 건강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고마운 기다림은 매번 너무나 허무하고 허망하게 끝이 나고야 말았다.

 

세 번의 임신은 모두 계류유산(고사난자)으로 스스로 배출되지 못했고 결국 세 번 모두 병원에서 소파술을 진행해야만 했다. 의사 선생님은 고사난자라고 했다. 어떤 날은 난황이 보일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난황조차 없이 텅 빈 아기집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때도 있었다. 아이는 생기지 않은 채 아기집만 자꾸 커지다가 결국 어느 순간 자람을 멈춰버렸고 그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차가운 수술실로 들어가 소파술을 받아야 했다. 몸도 몸이지만 텅 비어버린 아기집을 초음파 화면으로 확인하고 수술대에 오를 때마다 내 마음은 갈갈이 찢겨나가는 것만 같았다.

임신 초기 아기집만 보이는 초음파 사진
아기집만 보이고 더 이상 자라지 못했던 당시의 초음파 기록

유산 후 딸에게 설명한 것들

더 마음이 아팠던 건 첫째 딸아이에게 이 상황을 다시 설명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유산 사실을 알기 전 나는 너무 기쁜 마음에 딸아이에게 "이제 예쁜 동생이 생긴단다" 하고 신나서 말을 전했었다. 동생을 기다리며 싱글벙글 웃던 아이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아이가 없어졌다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기가 너무나 고통스럽고 미안했다. 하지만 결국엔 사실대로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고 나는 아이 눈높이에 맞춰 "아기집만 생기고 진짜 아기는 생기지 않았대" 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엄마, 왜 아기집만 생겼어요?" 하고 해맑게 물어왔다. 그 질문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고 "응, 아기가 살 집이 조금 문제가 생겨서 아기가 들어오지 못했나 봐" 하고 나지막하게 다독여주었다. 다행히 딸아이는 엄마의 어두운 표정을 느꼈는지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동생이나 아기집에 대해 묻지 않았다. 어린아이였지만 엄마의 슬픔을 눈치채고 더는 떼를 쓰거나 질문을 던지지 않고 조용히 안겨오는 딸아이를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에 몰래 눈물을 삼켜야 했다.

회복 한 달, 입덧이 사라지는 게 슬펐다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한 달 동안, 나를 가장 괴롭혔던 건 몸의 변화였다. 수술 후 며칠이 지나자 그렇게 나를 울렁거리게 만들고 괴롭혔던 입덧 증상이 거짓말처럼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보통은 입덧이 사라지면 몸이 편해져서 좋아해야 하는 게 맞지만 나는 입덧이 사라지는 그 매 순간이 너무나 슬프고 서글펐다.

 

몸에서 느껴지던 입덧 기운이 옅어질 때마다 '아, 이제 내 몸에서 아이를 품고 있던 호르몬마저 완전히 다 사라져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턱 막혔다. 내가 도대체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누구보다 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 아픈 일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는 건지 하늘이 참 무심하다는 원망이 솟구쳤다. 게다가 세 번째 유산이라 이번엔 진짜 잘 준비됐다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비슷한 시기에 임신했던 딸 아이의 친구 엄마의 배는 만삭이 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주치기가 싫을 정도로 속상하고 괴로운 마음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곤 했다.

외동인 딸을 보면 아쉽지만, 딸이 한 말

이제 첫째 딸아이가 번듯하게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다. 남편의 일 특성상 독박육아가 거의 확정되어 있는 상황이라 내 나이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볼 때 이제 둘째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접은 지 오래다. 하지만 길을 가다가 아기자기하게 둘이서 손을 잡고 다니는 자매나 형제를 보거나 하나뿐인 외동 아이를 키우는 집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 한구석에서 씁쓸하고 아쉬운 마음이 불쑥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욕심 때문에 딸아이에게 평생 함께할 피붙이 동생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감정이 늘 마음 한켠에 짐처럼 남아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딸아이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엄마, 나는 외동이라서 참 좋은 것 같아" 하고 너무나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딸이 "외동이라서 참 좋은 것 같아" 했다. 그 문장이 내 가슴에 툭하고 부딪히는 순간, 그동안 둘째를 갖지 못해 마음속 깊은 곳에 쌓아두었던 미안함과 죄책감의 앙금이 한순간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엄마의 온전한 사랑을 독차지하는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었는데 정작 나 혼자 미안해하며 지나간 슬픔의 그늘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흘려보낸 세 번의 아픈 인연들에 매여 속상해하기보다 내 곁에서 이렇게 예르고 바르게 자라 준 단 하나의 소중한 내 딸아이에게 온 마음과 사랑을 쏟으며 매일을 감사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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